고객 집착은 자율주행하지 않습니다.

고객 집착은 자율주행하지 않습니다.
디어 자율주행팀 팀원들이 연구개발에 한창인 모습.
“자율주행팀은 디어에서 연구개발팀으로 여겨졌어. 하지만 연구개발을 하는 팀이라고 해서 모든 걸 다 만든 다음에 출시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고객을 만나보면서 우리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검증을 빠르게 받아보자. 이런 고민을 수용하고 나서야, 비로소 변화가 시작됐지.”


디어는 국내 공유 킥보드 업계에서 유일하게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 나섰던 회사입니다. 초행길 1㎞를 자율주행하는 똑똑한 킥보드를 만드는 데 성공하기도 했죠.

그러나 잘 달리고 있던 자율주행팀은 하나의 결정적인 질문을 마주하고, 멈춰 서게 됩니다.

만에 하나 우리가 테슬라만큼 자율주행 기술을 잘 만들었다고 쳐보자.
그러면 고객이 우리가 만든 자율주행 킥보드를 좋아할까?
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 명확하게 답하지 못하겠더라고.

오늘은 ‘매 순간 고객 집착을 유지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고객 집착은 결코 일회성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 일하는 내내 끊임없이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주는가?’를 고민하지 않으면 고객 집착은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

아주 오래 전부터, 제프 베조스는 고객 집착의 중요성을 강조해왔죠. /출처 : Instagram @jeffbezos

디어가 1년 9개월의 시간 동안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얻은 교훈입니다.


디어는 다음과 같은 문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자율주행 킥보드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무질서하게 흩어진 킥보드를 수요가 많은 지역으로 재배치하기 위해 사람이 하나씩 찾아 차에 싣는다.
→자율주행 기술로 킥보드 재배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서비스 지역 곳곳에 반납금지구역이 있어 고객이 불편해한다.
→알아서 적절한 곳으로 이동하는 자율주행 킥보드를 도입하면 반납금지구역을 없앨 수 있다.

아무 데나 방치된 킥보드가 도시의 흉물이 되거나, 인도의 점자블록을 가로막기도 한다. 이런 킥보드들이 지자체에 견인 당하기도 한다.
→자율주행 킥보드는 이용자가 적절하지 않은 곳에 주차했을 때 즉시 이동할 수 있다.
점자 블록 위에 주차 된 킥보드. 우린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어요.

우리는 공유 킥보드가 일으키는 다양한 문제를 자율주행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고 기대했습니다. 특히 반납금지구역 등의 고객 불편을 해소할 수 있고, 절감한 인건비를 디어 이용료 인하로 고객에게 돌려줄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죠.


이처럼 자율주행 킥보드 프로젝트의 시작점은 분명히 ‘고객 집착’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처음에만’ 고객집착을 했을 뿐, 점점 고객을 잊고 기술만 파고드는 외골수가 되어갔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변해간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먼저 “자율주행 킥보드를 통해 고객에게 큰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는 명제를 너무 과신했어요.

이런 믿음은 ‘처음에 잘 집착했으니까, 이제 우리는 어떻게든 자율주행 킥보드를 만들기만 하면 돼’라는 생각으로 이어졌어요. ‘지금 만들고 있는 킥보드를 사람들이 좋아해 줄까’라고 계속 의심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거죠.

연구개발이 너무 잘된 것도 문제를 키운 원인이 됐어요. 엔지니어 몇 명으로 시작한 팀이 불과 몇 달 만에 성수동 사무실 한 바퀴를 자율주행하는 킥보드를 만들어냈고, 일 년이 넘은 시점에는 초행길 자율주행을 1㎞나 해냈으니까요.

자율주행 킥보드 소프트웨어가 길을 인식하는 화면.

우리 자율주행 킥보드는 경진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았고, 국토교통부를 비롯해 각종 언론, 벤처캐피탈, 심지어 가맹사업주님들까지 관심을 보이고 응원해 주셨어요. 우리는 정말 잘하고 있다고만 믿었죠.


뒤늦은 의문이 들기 시작한 건 1km 자율주행을 달성하고, 다음 마일스톤을 정하는 과정에서였습니다.

“우리가 왜 자율주행을 개발하고 있지?”
“이 일을 통해 우리는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주려고 하는 거지?”
자율주행 킥보드가 가는 이 길이 고객을 향한 경로였다면...

그동안 우리는 ‘고객 집착을 충분히 하고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앞서 서술한 것처럼 킥보드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 문제, 통행에 방해되는 주차 문제, 반납금지구역의 불편함 등이 자율주행이라는 솔루션의 시작점이 됐었기 때문이죠.

실제로는 자율주행이라는 찬란한 기술에 매혹된 상태였습니다. 점점 늘어나는 주행 정확도와 주행거리에 취했고, 고객의 니즈로부터 점차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죠.

우리는 낮아진 고객 집착을 그대로 방치했습니다. 그리고 프로젝트 과정에서 찾아온 여러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객의 편의가 아닌 기술적 편의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실수를 저질렀죠.

대표적으로 자율주행 킥보드 하드웨어로 삼륜 킥보드를 채택한 결정이 있습니다. 자율주행 킥보드는 스스로 중심을 잡고 주행할 수 있어야 해요. 하지만 길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이륜 킥보드는 혼자 중심을 잡을 수가 없어요.

삼륜 하드웨어를 구상하던 당시에 그린 구조도.

그래서 우리는 개발 초기 단계에서 균형 유지가 가능한 하드웨어를 모색했습니다. 다양한 선택지 가운데 잘 넘어지지 않고, 개조하기 쉬운 삼륜 킥보드 구조를 우리가 제작할 하드웨어로 채택했어요. 코너를 돌 때 불편하다는 단점이 지적됐지만, 그렇게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고 넘어갔어요.

이런 선택은 추후 엄청난 기회비용으로 돌아왔습니다. 삼륜 자율주행 킥보드를 연구실에서 필드로 내놓을 시점이 돼서야 문제를 발견한 겁니다.

“잠깐만, 시중에 나와 있는 삼륜 킥보드가 왜 이렇게 적어?”
“주문 제작하려고 하니 삼륜 킥보드 자체를 만들어 본 회사가 별로 없는데?”

명백한 이상 신호였죠. 삼륜을 찾는 소비자가 거의 없다는 얘기였으니까요.

어렵사리 구한 삼륜 킥보드들을 실제로 테스트해 보니 너무 불편하다는 사용 경험이 많았습니다. 이륜 킥보드에 비해 방향 전환이 너무 불편하고 오히려 ‘위험하다’는 느낌이 강했다는 거죠.

삼륜 킥보드를 서비스하는 공유 킥보드 업체도 거의 없었습니다. 미국의 ‘Spin’이라는 회사가 거의 유일한 사례였는데, 회사에 문의한 결과 역시 고객들의 사용성이 양호하지 못해 아예 다른 형태로 개발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시중에 나와 있는 ‘바퀴 세 개 달린 킥보드’라는 하드웨어로는 고객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

고객 집착 없는 연구개발이 얼마나 길을 잘못 들 수 있는지 깨닫게 됐죠.


자율주행팀은 뒤늦게 고객 집착에 다시 시동을 걸었습니다.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바꾸는 것도 고려하게 됐죠.

자율주행 기술을 완성하는데 꼭 집착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우리는 원격제어 킥보드를 새로운 대안으로 논의하게 됐습니다. 컨트롤러를 이용해 멀리 있는 킥보드를 움직이는 기술로, 자율주행보다 훨씬 상용화가 쉽다는 장점이 있죠.

우린 원격주행 킥보드로도 고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결론에 다다랐죠.

앞서 정의한 고객의 문제는 대부분 ‘킥보드 재배치에 인력이 많이 들어간다’는 데서 나왔죠. 원격제어는 자율주행처럼 인력의 투입을 ‘0’으로 만들 순 없었지만, 인력 투입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은 가능하거든요.

기술이 완벽히 완성돼야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자율주행 킥보드. 지금 당장이라도 고객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원격제어 킥보드. 고객 집착의 관점에서 보면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가 명확하죠.


총 프로젝트 기간 1년 9개월. 그중에 1년 6개월을 자율주행 킥보드 개발에 매진했던 우리는 기술 측면에서 뛰어난 성과를 이뤄냈지만, 고객 측면에서는 오히려 퇴보했습니다.

오히려 더 의미 있는 결과물을 얻은 것은 “우리가 왜 자율주행을 개발하고 있지?”라는 질문을 던진 이후의 마지막 3개월이었습니다.

우리는 먼저 원격제어 킥보드로도 충분한 고객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됐습니다. 이를 자율주행 기술로 나아가는 발판으로 활용할 수도 있겠죠. 그리고 자율주행이나 원격주행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에 앞서, 우리가 개발하는 기술을 구현할 수 있으면서 고객도 만족하는 새로운 하드웨어가 필요하다는 점도 깨달았습니다.

고객 집착은 내가 아닌 고객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사고방식으로, 이를 유지하려면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마치 중력을 받아 낙하하는 물체처럼, 고객 집착은 가만히 두면 자연스럽게 하향 곡선을 그리게 되거든요.

물론 디어 팀원들은 늘 고객을 생각하며 일하는 인재들입니다. 하지만 자율주행팀의 사례는 단순히 ‘고객 집착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철저한 고객 집착을 프로젝트 내내 이어가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가 됐죠.

디어는 함께 ‘고객 집착’에 진심이 될 팀원들을 찾고 있어요. 디어 채용 페이지에서 디어의 조직 문화, 복지 등에 관련된 다양한 정보와 채용 중인 직군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어요.

디어와 함께 일상을 바꿀 동료를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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