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가 가려는 길

디어가 가려는 길
출처: Unsplash <Javier Allegue Barros>

오늘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지지난 글(링크)을 마치면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언젠가 사람들이 우리가 하는 일로 인해 이렇게 말했으면 좋겠다.
“디어 너무 좋아!”, “디어야 고맙다”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해 디어는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까요? 이 고민은 답도 없고 끝도 없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쓰기까지 몇 주 정도 고민을 해보았는데, 저도 자신 있게 정답을 외칠 수가 없겠더라고요.

미래를 내다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특히 디어가 현재 속한 공유 킥보드 시장을 묘사할 때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는 말이 적확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름대로 세 가지 기준으로 미래를 그려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어느 한 방향을 딱 정하기보다는, 어느 방향으로 가도 변하지 않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이동의 형태와 규제, 하드웨어, 통신 기술은 모두 변하는 것들입니다. 이것들이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많이 변할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디어에 킥보드를 공급하는 세그웨이에서 자율주행 킥보드를 개발하고 상용화를 준비 중인데, 그런 기술 변화는 공유 킥보드 서비스의 비용 구조와 운영 방식을 완전히 새롭게 바꿀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변화는 예측이 어렵습니다.

반면 ‘사람은 종종 지각을 한다’, ‘사람은 자다가 눈을 뜨기 어려워한다’, ‘사람은 지루한 것을 싫어한다’ 같은 것들은 꽤 오랫동안 변치 않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죠.

그래서 변하는 것에 집중하면 안 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공유 킥보드 서비스를 세상 누구보다 잘하고 싶고, 국내에서도 제일 큰 규모로 하고 싶다’라고 생각한다면, 5년 후에 다음과 같은 미래가 펼쳐졌을 때 딱히 소용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2026년,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지 않는다. 뉴스, 문자, 메일 등 대부분의 정보는 귀에 꽂고 다니는 이어폰으로 흡수한다.

시각 정보가 필요한 경우에는 한 때 신문 가판대와 공중전화 부스, 우체통이 서 있었던 곳에서 일회용 태블릿을 하나 꺼내서 사용하면 된다.

태블릿에 지문이나 홍채를 인식하면 내 메일함, 내 슬랙, 내가 보는 뉴스, 내게 온 문자, 내가 보고자 하는 영상들을 볼 수 있다. 사용한 후에는 재활용 수거함에 두면 된다.

태블릿은 하나에 500원 정도로 생수만큼 저렴하고 흔해져서 굳이 몸에 지니고 다닐 이유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걷기 싫은 거리를 가기 위해 지금과 똑같은 방식으로 공유 킥보드를 탈까요? 아니면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형태의 서비스가 새로 등장한 후 이동의 문제를 킥보드보다 더 잘 풀어내고 있을까요?

좀 더 현실적인 상상을 해보겠습니다. 만약 재택근무가 활성화되고, 대부분의 서비스가 집으로 찾아오는 온디맨드 방식이 보편화되면, 킥보드 서비스의 매출 중 통근, 통학, 외출이 차지하는 부분은 어떻게 될까요?

한 때 사람들의 문제를 기가 막히게 해결해주던 것들 (킥보드는 언제쯤 이 사진에 들어갈까요?)

그래서 저는 디어가 지금 하는 서비스는 하나의 ‘아이템’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하는 사업을 사랑하고, 어떻게 하면 더 훌륭하게 해낼 수 있을지 집착하는 것만큼이나, 이 사업이 고객의 문제를 푸는 최적의 방법이 맞는지, 그리고 이 사업이 풀어내는 문제가 크고 중요한 문제가 맞는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풀 만한 문제를, 최적의 방법으로 풀고 있는지
계속 고민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탈레스 테이셰이라의 <디커플링>이라는 책을 읽어보세요!


둘째로, 주변에서 다양한 사례를 수집함으로써 기업이 빠질 수 있는 근시안에서 탈출하는 것도 꽤 중요한 것 같습니다.

특정 산업에서 훌륭함을 발휘하고 있는 기업들 중에는, 그 산업에 특별한 애착이 있지는 않았던 사례들이 존재합니다.

토스의 이승건 대표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에서 “금융을 하려는 생각은 없었다. 그냥 사람들이 살면서 제일 자주 하는 건데 너무 불편한 게 뭐가 있지? 라는 생각을 했다.”라고 했습니다.

카카오의 김범수 의장은 카카오톡을 만들기 전에 사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PC방을 차리고 PC방 요금정산 프로그램을 팔았습니다. 그 후 한게임을 만들고, 카카오톡을 만들었는데 그 때마다 비전이 ‘사업 아이템’에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재밌는 점은 카카오톡을 만들기 전부터 이미 ‘컨셉이 엇비슷한' 다양한 서비스를 시도했다는 것입니다. 카카오톡이 나오기 한 달 전쯤 카카오아지트라는 단톡방 내지는 슬랙 같은 서비스를 만들었죠. (슬랙보다 무려 3년이나 앞섰네요)

카카오톡이 가장 주력 서비스가 아닌 시절도 있었나 봅니다 (링크)

아래 블로그 글을 보면 카카오는 꽤 초창기 시절부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라는 좀 더 포괄적인 비전 하에 다양한 아이템들을 출시(링크)했던 것 같습니다.

2010년 3월에 카카오톡이 출시됐고, 아래 블로그 글은 2011년에 작성되었으니 당시의 카카오는 지금의 디어보다 더 어렸을 때인데, 배울 점이 정말 많은 것 같습니다.

2011년에 작성된 어느 블로그 글에 나온 카카오톡의 철학 (링크)

삼성을 세운 이병철 회장은 정미소에서 청과물 가게를 거쳐 설탕 제조업, 양복 제조업까지 하고 나서 반도체를 시작했습니다. 각각의 아이템에 대한 애착이나 비전이 집착으로 이어졌다면 지금의 삼성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엘론 머스크는 처음 Zip2를 창업하면서 가까운 미래에 온라인 은행, 자율주행 전기자동차, 우주선을 만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위대한 기업들은 아이템을 넘어서 더 큰 비전을 좇는 것처럼 보입니다. 디어는 ‘공유 킥보드’라는 아이템을 넘어 어떤 비전을 좇아야 할까요?

위에 언급된 위대한 기업인들이 지금 디어에 있었다면 어떻게 미래를 설계했을까요? 궁금하네요.

디어는 공유 킥보드라는 아이템을 넘어 어떤 비전을 좇아야 할까요?

잘 흉내내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킥보드 공유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사람들의 일상을 좀 더 편하게 만든다.”가 아니라, “우리는 사람들의 일상을 좀 더 편하게 만들기 위해 킥보드 공유 서비스를 제공한다.”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무엇을 하는지(WHAT)’보다 ‘왜 하는지(WHY)’가 더 중요합니다.

셋째로, 재밌고 즐거운 일을 해야 합니다! 저는 미래를 그리는 세 가지 기준 중 이 세 번째 기준이 제일 중요한 것 같기도 합니다.

수익성 좋은 히든 챔피언을 운영하든, 유니콘으로 회사를 키워가든, 매니아층으로부터 사랑 받는 힙한 서비스를 만들든, 그 일을 하면서 재밌고 즐거워야 합니다.

사람들로부터 경영의 구루 혹은 혁신가로 존경을 받는다 한들, 그 일을 하는 내내 괴롭고 귀찮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러고 있나’라는 생각을 떨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책 ‘배민다움'을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정말 재미있어서 하는 일

김봉진 대표는 전문학원에 다닐 때든, 군대 경험을 이야기할 때든, 지금 현재 얘기를 할 때든, “그때 참 재미있었어요", “재밌잖아요?”와 같은 말을 버릇처럼 한다.

빌 게이츠는 자신의 사업이 ‘재미있는 것’이 되리라는 데에는 확신을 가졌지만, ‘그렇게 많은 돈을 벌게 해줄 것’이라고는 상상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에게 인생의 목표는 ‘재미있는 일거리’를 갖는 것이었다. 만약 떼돈을 벌겠다는 것이 목표였다면, 아마도 그는 창업 초기에 DOS시스템을 팔라는 IBM의 제의에 비즈니스를 넘겨주었을지도 모른다.

테슬라의 앨런 머스크는 “우주개발사업인 스페이스-X가 결실을 거두기까지 요원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난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이 일을 하는 게 아니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 정말 중요한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하는 사업이어서 하루하루가 정말 재미있다”고 말한다.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은 그의 책 <내가 상상하면 현실이 된다>에서 비즈니스와 인생에서 즐거움과 재미를 추구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말한다.

이 위대한 기업인들에게는 ‘재미’ 그 자체가 성공이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회사를 만들고 운영하는 것이 성공을 향한 여정인 게 아니라, 이미 그 여정 자체가 이 분들에게는 성공한 삶이지 않았을까요?


여기까지 제가 생각하는 ‘디어가 가려는 길’을 셋으로 나누어 써보았습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저도 정답이 무엇인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위의 기준에 따라 하고 싶은 일을 정의하고, 그 일에 팀원들의 의견이 모이고, 다같이 치열하게 최선을 다한다면 끝이 어떻든 과정 자체가 충분히 행복할 것 같다는 낙관은 있습니다.

써놓고 보니 이 글은 마치 누군가 제게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냐고 방향을 묻는데, “누구랑 가는 건데? 뭐 타고 가는데? 날씨가 어떤데?” 같은 역질문을 던지는 식인 것 같습니다.

동문서답에 관한 만화

다음 글을 기대해주세요! :)

-->